[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막힌다면 세계 에너지 시장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2026년발 호르무즈 충격은 이 질문에 대한 일종의 실전 테스트 역할을 담당한 모양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놓고 보면 일단 낙제점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원유와 LNG의 각각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가 흔들렸지만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공급망을 재편하며 충격을 흡수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번 위기를 넘긴 안전판을 다음번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냐는 물음엔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인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다음을 위한 대응책 마련, 바로 지금이 그걸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 이번엔 어떻게 버텼나.. 비축유·우회로·수요감축 덕 봐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는 지난 17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위기가 마지막 에너지 공급 충격이 아닐 수 있다”며 향후 에너지 안보를 위해 공급원과 운송로, 비축, 수요관리 등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2030년까지 현재 추진 중이거나 논의되고 있는 대응책이 현실화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원유 물량의 35~70%를 다른 경로와 수단으로 상쇄할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보고서에서도 드러났듯 이번 호르무즈 충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가 공급 감소분을 하나의 대체 공급원으로 메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기준 하루 약 2130만배럴이 호르무즈를 통과했지만 해협 폐쇄 이후 실제로 메워야 했던 공급·수요 격차는 약 1550만배럴로 줄었다. 일부 물량이 계속 해협을 통과했고, 중국 등을 중심으로 축적된 재고가 시장에 풀리면서 충격의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후 본격적인 완충장치가 작동했다. 보고서는 우회 파이프라인과 생산량 증가가 부족분의 약 35%를 메웠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과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 연결 파이프라인을 통한 우회 물량이 핵심이었다. 비축유는 약 20%를 담당했다. 각국이 하루 약 350만배럴의 비축유를 시장에 풀었고 이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EA) 공조 물량이 약 250만배럴, 중국이 약 100만배럴을 공급했다.
나머지 약 45%는 아예 소비가 줄면서 흡수됐다. 맥킨지는 2025년 4분기에서 2026년 2분기 사이 세계 석유 소비가 680만배럴, 5%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선진국의 경우 석유 수요를 약 20%, 하루 120만배럴가량 줄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사태는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 이미 상당한 충격 흡수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치들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도 드러냈다. 재고는 줄어들고 있고 정유 시스템의 부담은 커졌다. 파이프라인과 우회로 역시 더 넓은 지역의 지정학적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다음 봉쇄가 가질 충격파를 오롯이 흡수할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 플랜B 마련으로 향후 충격 대비하는 지혜 필요
세계가 준비하는 다음 단계는 이번에 임시로 작동했던 안전판을 구조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수단은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파이프라인이다. 맥킨지는 위기 이전에도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여유 능력이 하루 450만배럴 수준이었으며 기존 계획대로라면 2030년에는 65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이라크-튀르키예 파이프라인,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파이프라인 확대, UAE의 추가 푸자이라 연결망 등 현재 논의되는 프로젝트가 모두 현실화하면 우회 능력이 1300만배럴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밖에 걸프 지역 밖의 원유 생산능력과 석탄 전환 능력도 공급 충격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거론된다. 맥킨지는 현재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2030년까지 각각 하루 약 250만배럴의 대응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석유 수요 역시 2030년까지 약 450만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새로 확보되는 공급능력 모두가 순수한 ‘비상 여유분’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전기화도 장기적인 안전판으로 거론된다. 맥킨지는 전기차 확대와 산업·가정의 전기화, 바이오연료 등을 통해 2030년까지 약 350만배럴의 석유 수요를 대체하는 효과가 기존 추세에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기차는 2026년 말 전 세계 신차 판매의 약 3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운행 중인 자동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은 아직 5% 미만이어서 기존 화석연료 자산을 교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맥킨지는 이 수치를 2030년의 실제 확보 물량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논의되는 프로젝트 가운데 상당수가 초기 단계이고 실제 착공과 완공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35~70% 역시 예측치가 아니라 현재 논의되는 대응책이 모두 실행됐을 때의 잠재적인 상쇄능력이다.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안정적인 공급처만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신규 대형 송유관의 비용이 완전 가동을 전제로 배럴당 10달러 미만인 반면 걸프 지역 밖의 신규 석유 공급은 배럴당 40~60달러, 석탄을 액체연료로 전환하는 방식은 배럴당 75~185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모든 대체 수단이 동일한 경제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파이프라인은 호르무즈 의존도를 낮추지만 걸프산 원유 의존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우디와 UAE의 원유를 다른 항로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이 연결된 홍해 역시 지역 분쟁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특정 우회로 하나에 다시 의존할 경우 새로운 취약성이 생길 수 있다.
바로 여기서 플랜B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호르무즈를 완전히 대체하는 길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가장 먼저 공급처를 늘리고 연후에 해협을 우회할 운송망을 확보함과 동시에 비축유를 쌓고 필요할 경우 수요를 줄일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종의 구조적 변화를 꾀하는 셈인데 한국이 이번 충격에서 이런 구조적 변화를 실제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 맥킨지의 주장이다. 맥킨지는 한국과 일본의 정유사들이 2026년 걸프산 원유를 미국산 원유 등으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효율성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의 재고 방출과 생산 증가에 따른 수출 확대가 한국의 수입 감소를 완화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이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단순히 중동산을 다른 나라산으로 바꾸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에 더해 원유와 LNG의 공급처를 나누는 것뿐 아니라 어느 항로를 통해 들여오는지, 국내에 어느 정도의 재고와 저장능력이 있는지, 특정 원료에 맞춰진 정유·석유화학 설비가 다른 원료를 얼마나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에너지 안보는 특정 국가의 수입 의존도를 하나의 숫자로 평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공급 구성, 교역 의존도, 운송 경로, 단기 대응능력, 장기 대응능력 등을 함께 봐야 하는 종합적 문제기 때문이라는 것이 맥킨지의 주장인 셈이다.
분명한 건 호르무즈가 다시 닫힐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태 재발을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여 이와 유사한 사태로 인해 경제가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지 않을 선택지 증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