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것이 곧 화석연료의 온전한 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전환이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교체하는 과정이라는 기존의 공식과 달리 세계 에너지 수요가 커지면서 재생에너지와 화석연료가 한동안 함께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발전원 하나를 다른 발전원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에너지전환의 현재를 설명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재생에너지의 점유율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실제 2025년 세계 태양광 설비는 약 30% 증가했고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도 석유·가스 투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럼에도 화석연료가 새로 더한 에너지의 절대량은 재생에너지보다 컸고, 세계 전체 에너지 수요는 1.3% 증가했다. 재생에너지의 성장과 화석연료의 퇴장이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 에너지전환, 발전원 교체만으로는 불가능해
맥킨지는 최근 발표한 ‘에너지전환 투자: 전체 시스템의 가치를 볼 때’ 분석에서 기존 에너지전환의 평가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 속도나 저탄소 분야 투자액 같은 단순 지표만으로는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실질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지속적인 에너지 수요 증가가 있다. 맥킨지는 2025년 냉방 수요 증가와 화물운송·석유화학 산업의 확대, 데이터센터 성장, 산업설비 증설 등이 전 세계 에너지 수요를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보급과 산업 전기화 역시 기존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한편 새로운 전력 수요를 창출하며 전체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런 변화는 투자 규모를 확인해도 잘 알 수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 투입된 총투자금은 약 3조 3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화석연료·발전·저탄소 기술 분야에 약 1조 8000억 달러가 집행되었으며 전력망과 저장장치에는 약 4790억 달러, 에너지 효율 및 최종소비 부문에는 약 7730억 달러가 투입됐다. 석유·가스의 탐사 및 생산에는 약 5400억 달러, 태양광 발전에는 약 4400억 달러가 각각 투자됐다.
이는 에너지 시장이 단순히 특정 에너지원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는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화석연료와 저탄소 에너지는 물론 발전설비와 전력망, 저장장치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본적으로 생산된 전력을 수요처까지 안정적으로 수송하려면 튼튼한 전력망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태양광·풍력처럼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변동하는 재생에너지 특성상 발전량이 줄어드는 시간대에는 저장장치나 다른 발전원으로 부족분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병목현상도 부각되고 있다. 맥킨지는 이제 단순한 자본 부족보다 전력망 건설 지연 및 인허가 문제, 그리고 필요한 순간 즉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백업 발전능력 확보 등이 핵심 제약 요인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즉, 발전소를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보다 생산된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달하고, 공급이 부족할 때 어떻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맥킨지가 강조한 전체 시스템의 가치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특정 발전원의 단순 성장률만 볼 것이 아니라 송전망과 저장장치, 예비전력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창출하는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역시 동일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전력거래소(KPX)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망에 따르면 국내 전력소비량은 2023년 552.32TWh에서 2038년 624.48TWh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전력 수요 또한 같은 기간 118.0GW에서 129.3GW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체 전력 사용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피크 시간대의 공급 능력을 확보하는 일이 점차 핵심 과제로 부상하는 이유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안정적으로 받쳐줄 대규모 저장장치 확보도 시급하다. KPX 자료에 따르면 2038년까지 필요한 장주기 저장장치는 전국 22.5GW, 제주 0.505GW 등 총 23.005GW에 이른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양수발전과 다양한 저장장치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수적이다.
결국 에너지전환의 초점은 단순한 발전소 건설에서 전력 시스템 전체의 최적화로 확대되고 있다. 발전설비 확충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과 저장장치, 그리고 공급을 보완할 유연성 발전능력까지 종합적으로 갖추어야 할 시점이다.
◆ LNG, 브리지 연료 넘어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 자원으로
이러한 변화 속에서 LNG의 역할도 재조명받고 있다. 천연가스는 그동안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한시적인 징검다리(브리지) 연료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필요시 즉각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조절 가능한 발전능력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져 인위적인 출력 조절이 어렵지만 LNG 발전은 상대적으로 출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감하는 시간대에 전력을 즉시 공급함으로써 전력계통의 균형을 맞추는 핵심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 역시 가스를 모든 지역에서 단순한 임시 징검다리 연료로만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향후 수십 년간 주요 에너지원으로 계속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가스 발전이 반드시 상호 배제적이거나 즉각적인 대체 관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전력 정책에서도 LNG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KPX 자료에 따르면 2031~2032년 LNG 열병합 발전에 필요한 사업자 선정 물량은 1.3GW로 제시되었다. 또한 2035~2036년에는 원전·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을 대상으로 1.5GW 규모의 통합 용량시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LNG를 에너지전환의 주력 발전원으로 다시 확대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력수급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고 계통 조절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LNG의 보완적 역할이 여전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력계통을 보완하는 유용성과는 별개로 LNG 자체의 공급망 리스크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LNG는 국경을 넘어 거래되는 글로벌 연료인 만큼 생산국의 공급 차질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해상 운송로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5년 국제 시장에서 거래된 LNG의 62% 이상이 호주, 카타르, 미국 등 단 3개국에서 공급되었다. 이처럼 특정 생산국이나 특정 운송 경로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해당 지역의 생산시설이나 수송망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격 폭등과 수급 불안이 전 세계로 전이될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이러한 공급 집중 위험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한국의 국가별 LNG 수입 비중은 호주(28.3%), 말레이시아(17.0%), 미국(15.1%), 카타르(5.8%) 순으로 집계되었다. 주요 공급국별 비중이 재편되면서 국내 LNG 조달 구조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입선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2025년 미국산 LNG를 2028년부터 약 10년간 연 330만 톤 추가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새로운 핵심 공급원으로 추가 확보해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이어 가스공사는 2026년 5월에도 BP와 2028년부터 10년간 연 70만 톤 규모의 LNG를 추가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과의 계약을 통해 물량을 다각도로 확보함으로써 특정 국가나 단일 공급원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이다.
다만 단순히 계약 국가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에너지 안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계약과 스팟(단기) 구매 물량의 적절한 비중, 가격 결정 조건, 운송 경로의 안전성, 국내 저장용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정 공급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구조적 의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급망 리스크는 LNG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고 해서 에너지 안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전 세계 태양광 모듈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으며, 글로벌 배터리 셀 생산능력의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LNG가 자원 생산국의 공급 집중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면 태양광과 배터리는 제조 공급망의 특정국 집중이라는 또 다른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셈이다. 결국 에너지전환의 성패를 특정 발전원의 증감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맥킨지는 에너지 시스템이 가격 경쟁력, 안정적인 전력 공급,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네 가지 목표를 함께 충족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나의 에너지원만으로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과 함께 전력망과 저장장치를 확충하고, 발전량이 부족한 순간 전력을 보완할 수 있는 발전능력도 확보해야 한다. LNG 역시 이런 전력계통의 빈틈을 메우는 발전원 가운데 하나로 역할이 남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곧바로 LNG의 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앞으로의 에너지전환은 어떤 발전원을 얼마나 많이 늘릴 것인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저장장치, 필요한 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능력, 안정적인 연료 공급망을 어떻게 갖출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난다고 LNG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전력수요가 커지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이 존재하는 한 LNG를 비롯한 보완 발전원의 역할은 일정 부분 남을 수 있다. 에너지전환의 공식이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에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발전원과 인프라를 함께 구축하는 것으로 달라지고 있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