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SMR 개발서 시장 창출로.. 철강·석화·조선 묶어 상용화 속도

정부 이달 노형별 민관협의체 출범, 제도개선·R&BD·SPC 논의
전력 생산 넘어 산업공정열·선박 동력원으로 활용처 확대 관건

 

[엔트로피타임즈 김성민 기자]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의 무게중심이 원자로 기술개발에서 실제 수요처를 확보하고 사업화 기반을 만드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가 SMR 공급기업뿐 아니라 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잠재 수요기업을 한자리에 모으고 이달 안에 노형별 민관협의체까지 출범시키기로 하면서다. 이는 단순히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을 넘어 어디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SMR을 활용할 것인지와 이를 가로막는 제도·투자 장벽을 동시에 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일 구혁채 제1차관 주재로 ‘SMR 수요·공급 기업 간담회’를 열었다. 포스코이앤씨와 롯데케미칼,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수요기업과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 공급기업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 기업들은 해상 SMR 수요와 산업단지의 열 수요, 공급 필요 시점, 국내 입지 여건 등을 점검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달 안에 노형별 민관합동 협의체를 구성하고 킥오프 회의를 열어 제도개선과 R&BD, 특수목적법인(이하 SPC)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번 움직임은 정부의 SMR 정책이 기술 확보에서 사업화 조건 마련으로 한 단계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전기 만드는 원전 넘어 산업 에너지원으로 변신
SMR의 활용처를 넓히려는 이유는 시장을 전력 생산에만 한정할 경우 사업 기회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SMR은 전력 생산뿐 아니라 제철·석유화학 공정에 필요한 열을 공급하거나 선박의 추진 동력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부유식 원전 등 해양 분야로 활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개발 대상에 포함돼 있다.

 

정부가 이날 포스코이앤씨와 롯데케미칼 등 산업계와 조선사들을 함께 불러 모은 것도 이런 다목적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단지에서는 전력뿐 아니라 고온의 공정열 수요가 발생하고 조선업에서는 탈탄소화와 장거리 운항에 대응할 새로운 선박 동력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상 분야에서는 국내 기술개발도 이미 개념설계 단계까지 진전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1만5000TEU급 SMR 추진 컨테이너선 개념설계는 지난 7월 미국선급협회(ABS)의 기본승인(AiP)을 받았다. 다만 AiP는 개념설계의 기술적 타당성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로 실제 선박 건조나 상용 운항을 승인한 것은 아니다. 즉 기술이 완성되면 시장이 따라오는 구조가 아니라 기술개발과 동시에 실제 수요처와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상용화가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특히 해상 SMR은 육상 원전보다 상용화 과정이 복잡하다. 원자력 안전 규제뿐 아니라 선박 안전, 선급, 해사 관련 국제기준 등이 함께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8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해양 원자력 협력 프로젝트 ‘ATLAS’ 출범식에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ATLAS에는 IAEA뿐 아니라 국제해사기구(IMO) 등도 참여해 해양 원자력 기술의 안전·보안과 함께 법·규제·책임 체계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국제 기준이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지 못하면 기술개발 이후 해외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규제와 인증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조선사들의 의견을 듣고 국제기준 논의에 조기 참여하겠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개발 지원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다. SMR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원자로의 성능뿐 아니라 규제와 인증, 공급망, 사업구조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 다목적 SMR 글로벌 시장 선점 위해 10월 내 노형별 민관협의체 구성
정부가 민관협의체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SMR 상용화 일정도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미래성장동력 7대 SEED 프로젝트’에서 경수형 SMR은 2035년 상용화하고, 비경수형 SMR은 2030년대 건설에 착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비경수형 SMR은 개발 초기부터 민관이 공동 출자하는 SPC를 설치해 글로벌 시장 선점을 추진한다는 방향까지 제시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SPC가 논의 대상으로 거론된 것도 이 같은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SMR 기술을 개발한 뒤 민간에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투자 주체를 연결해 실제 프로젝트가 돌아갈 수 있는 사업구조를 함께 만드는 방식으로 정책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규제 측면에서도 상용화를 위한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비경수형 SMR 개발사업의 2030년대 초 인허가를 목표로 규제기술 연구개발에 80억원을 투입하고, 2026년 11월부터 인허가 신청 전에 원자로 설계를 검토받을 수 있는 사전검토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2027년 초에는 비경수형 SMR 노형의 사전검토 착수도 추진한다.

 

이는 SMR 사업에서 기업들이 부담하는 가장 큰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인 기술은 개발했는데 규제와 인허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문제를 개발 초기부터 줄이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간담회의 의미는 SMR 공급기업만 바라보던 기존 논의의 범위를 넓혔다는 데 있다. 원자로를 만드는 기업과 실제 에너지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한 테이블에 앉혀 수요 발생 시점과 공급 시점, 입지, 규제, 투자 구조를 함께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2027년 수립 예정인 ‘SMR 시스템 개발 기본계획’에 이번 논의 내용을 반영할 예정이다. 민관협의체에서 논의될 내용이 향후 SMR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구혁채 제1차관도 이날 논의된 사항을 기본계획과 촉진위원회 등 SMR 특별법 후속 조치 과정에 반영하고, 민관합동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 민간의 투자 불확실성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SMR 상용화의 다음 단계는 더 이상 원자로를 개발하는 데만 있지 않다. 수요처를 확보하고, 필요한 시점에 공급할 수 있는 기술과 사업자를 연결하고, 인허가와 국제 인증을 통과할 제도를 마련하고, 초기 투자를 끌어낼 사업구조를 만드는 것​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정부가 10월 민관협의체 출범을 예고한 것은 이런 상용화 조건을 한꺼번에 논의하기 위한 첫 단계다. 향후 협의체가 산업계의 잠재 수요를 실제 프로젝트로 구체화하고 제도 개선과 투자 구조까지 연결할 수 있을지가 국내 SMR 산업의 다음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