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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칼럼] 178년 전 ‘헨리 존 템플’의 영국 우선주의…MAGA의 원조

[임종순 칼럼니스트] 


연초부터 그린랜드 합병을 둘러싼 트럼프의 언행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정작 미국의 패권 욕심으로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의 국제정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9세기 영국의 외무부장관이었던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의 의회 연설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1848년 3월 1일, 그가 남긴 말이다. 



'1848년 유럽 혁명'의 발발


1848년은 유럽 전역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이 불길처럼 번진 '제국들의 봄‘ 시기였다. 프랑스에서는 2월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으며,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영국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특정 국가(동맹)의 편을 들기보다, 상황에 따라 영국의 국익에 가장 유리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유연함이 필요했다.


 

특정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선택’


영국 하원에서는 헨리 존 템플의 외교 정책이 너무 일관성이 없고 독단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 헨리 존 템플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대응했다. 


"영국은 충분히 강력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정책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그는 영국이 특정 국가의 '영원한 단짝'이 되어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했다. 대신, 영국의 목적과 일치하는 길을 가는 나라가 있다면 그때그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 유지


영국의 전통적인 외교 목표는 유럽 대륙에서 어느 한 나라가 압도적인 패권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프랑스가 너무 강해지면 러시아와 손을 잡고, 러시아가 너무 강해지면 오스트리아나 프로이센과 협력하는 식이다. 


'영원한 아군'을 정해두는 것은 오히려 영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좁히는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크림 전쟁: "어제의 적과 손잡고, 동맹을 치다"


크림 전쟁은 러시아 제국이 남하 정책을 펼치며 오스만 제국을 압박하자, 이를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등이 연합하여 싸운 전쟁이다. 


영국에 있어 프랑스는 수백 년간 ‘숙적'이었다. 불과 수십 년 전 나폴레옹 전쟁 때만 해도 사활을 걸고 싸웠다. 그런 영국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팽창이 영국의 이익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주저 없이 어제의 적이었던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에 맞섰다.


영국은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 관계가 단절된다. 나폴레옹을 꺾을 때 영국을 도왔던 러시아는 영국의 가장 큰 위협이 됐다. 영국은 과거의 은혜를 뒤로하고 러시아를 공격했다. "영원한 아군은 없다"는 말과 함께.



'영예로운 고립'


헨리 존 템플의 철학은 이후 영국의 외교 정책인 '영예로운 고립'으로 이어진다. 특정 국가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묶이지 않고, 유럽 대륙의 분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가 세력 균형이 깨질 때만 개입하는 방식이다.


가령 19세기 후반, 프로이센(독일)이 급격히 성장하며 세력 균형을 깨뜨리려 하자, 영국은 다시 한번 움직인다. 이번에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적이었던 러시아와도 손을 잡아(영러 협상),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의 발판이 되는 ‘3국 협상’을 구축하게 된다.



영국 외교의 세 가지 규칙


헨리 존 템플이 남긴 유산에 따르면, 영국의 행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영원한 적은 없다”는 것. : 필요하다면 원수와도 손을 잡는다는 원리다.


두번째는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 국익에 방해된다면 동맹도 저버린다는 원리다.


마지막 세번째는 “국익만이 영원하다”는 것. 영국의 해상권과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이 모든 외교안보 원칙 중에서도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헨리 존 템플은 이 원칙 덕분에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는 강한 지도자”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의 원칙을 계기로 영국을 “교활하고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부르기 시작했다.



청출어람이 청어람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오늘날 미국은 이런 영국의 정책을 특유의 비즈니스 전략과 엮어 외교정책으로 구사하고 있다. 


영국을 포함하는 등 유럽은 오늘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나토(NATO) 결속 위협을 비판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저 178년 전 헨리 존 템플의 가르침을 따를 뿐이다. 영국은 자신들이 가르친대로 미국으로부터 똑같은 보답을 받고 있는 셈이다.




임종순 칼럼니스트 /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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