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화사하고 화려하다. 겨울의 긴 침묵을 밀어내고, 햇빛은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거리마다 꽃이 피고, 나무는 연록의 빛을 틔운다. 사람들은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고, 세상은 다시 살아난 듯 보인다. 생명의 계절, 봄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계절은 마음을 온전히 밝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화사함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과 슬픔이 스며든다. 꽃이 만개할수록, 그 향연은 내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슬픈 감정들을 끌어올린다.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잊고 있던 기억과 고통이 선명해진다. 영국 작가 엘리엇(T. S. Eliot)은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죽어 있던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이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이 된다는 뜻이었다. 겨울의 무감각 속에서는 잊을 수 있었던 것들이, 봄이 되면 다시 감각을 되찾으며 되살아난다. 그래서 생명의 회복은 곧 기억의 회복이고, 기억의 회복은 곧 고통의 재현이 된다. 봄의 역설(逆說) 봄의 빛은 어둠을 밀어내지만, 동시에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드러낸다. 겨울에는 얼어붙어 있던 감정들이, 봄이 되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통증에 가깝다. 연록의 초
기자에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의 90%는 사실 기자가 대답하려고 숨을 고르는 순간 이미 다른 얘기를 꺼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머지 10%, 그러니까 기자의 대답을 진짜로 듣기를 원하는 분들에 대한 보고서다. 종전 이익이 더 커졌을 때 전쟁이 끝난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하는 심리상태를 추정해 본다. 대부분 ‘단기간에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동시에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고 미안하게도 이런 갸륵한 마음과 순박한 기대는 하나의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된 것 같다. 얼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땅 욕심이 많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너무나 잘 버텨 강대국 러시아의 완전한 점령을 성공적으로 막고 있다”는 서사도 이런 가정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러시아는 유럽 지향적이고 선량한 우크라이나 하나도 제대로 점령하지 못하는 ‘종이 호랑이(실제 한국 언론은 이런 표현을 썼다)’에 불과하다”는 서사도 간혹 소개된다. 전쟁의 원인, 좀 더 구체적으로 당사자들이 전쟁을 감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입어야 할 고통을 입는다.” 지금의 국제 상황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 있을까? 무려 2400년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글이다. 패권을 쥐고 있던 그리스가 전쟁 상대인 약소국 멜로스 동맹 협상단에게 한 말이다. 되풀이되는 역사, 소환된 2,400년 전의 비극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전쟁 당사자는 물론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에너지 공급이 어려운 아시아, 아프리카 약소국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4년 전, 러우전쟁으로 2차 오일쇼크 보다 더 큰 가스 대란의 공포 속에서 잠 못 이루며, 뒤척였던 기억이 선하다. 아니나 다를까, 전쟁의 결과는 전기·가스 요금 폭등, 관련 공기업의 천문학적 적자라는 혹독한 대가로 돌아왔다.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 속에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시 펼친다. 멜로스 대화편의 냉혹한 현실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는 사실을 중동의 포화 속에서 다시 한번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후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멜로스의 실수와 마크 카니의 경고 아테네에 저항
2026년 2월 28일에 발발한 미국, 이스라엘, 이란 간의 전쟁에 대한 미국민들의 평가는 무엇인가 ?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당일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전역의 수백 개 군사 목표물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하였다. 개전 첫날 가해진 공습으로 이란의 최고 지도부를 포함한 핵심 인물들이 사망하거나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양측은 5주 이상 치열한 교전을 지속하였다. 그리고, 최근 파키스탄의 중재를 통해 2026년 4월 8일부터 2주간의 임시 휴전이 선포된 상태다. 2026년 4월 15일 현재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나, 분쟁의 완전한 종결 여부는 불투명하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문제와 이란 내 핵 시설에 대한 검증 절차를 둘러싸고 양측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여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패권주의(Hegemonism)에 빠진 미국 이번 전쟁의 도화선은 외교적 필연성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끈질기게 회유하며 이란의 위협을 실존적 공포로 각인시킨 과정은 전쟁의 방아쇠가 되었다. 네타냐후는 중동 내 이스라엘의 패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미국의 화력을 빌려 이란의 핵 시설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햇빛소득마을’ 정책은 단순히 농촌을 살리거나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며, 에너지 생산과 소득 분배 구조를 동시에 바꾸려는 시도다. 지역경제와 기후정책을 결합하려는 새로운 전략으로 볼 필요가 있다. 태양광을 통해 생산된 전기의 수익을 주민들이 공유하는 이 모델은 ‘햇빛연금’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며, 농촌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동 전쟁으로 에너지 문제 더 심각해져 이 정책이 갖는 의미는 지금의 국제정세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중동 지역의 전쟁과 긴장은 원유 공급망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특정 해협과 항로에 의존하는 에너지 체계는 언제든지 봉쇄와 충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유가는 정치적 사건에 따라 급등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세계경제와 우리 국민경제로 전가된다. 에너지가 외부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는 곧 국가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원유는 공급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탄소 규제라는 새로운 비용 구조를 동반한다. 탄소는 이미
최근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세간의 이목은 KF-21 전투기 분담금 미납 문제와 그로 인한 껄끄러운 외교 관계에 쏠려 있었다. 프라보워 대통령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매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국익을 설계하는 '전략적 기획'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질은 방산 분담금 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생존을 지탱하는 '에너지 안보의 뿌리'에 관한 문제다. 1986년 11월 1일, 대한민국 LNG 역사의 시작 많은 이가 잊고 있지만, 대한민국 땅에 처음으로 천연가스의 불꽃을 피운 것은 인도네시아였다. 1986년 11월 1일, 평택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에 인도네시아산 LNG를 실은 선박이 처음 입항하며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시대'가 개막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수십 년간 우리에게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처였다. 동절기 에너지 수급 비상사태 발생시 우선적으로 LNG를 공급하여 위기를 넘기게 해준 나라가 인도네시아다. 심지어 2004년 12월 동남아를 덮친 쓰나미 사태 때에도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우리나라에 안정적인 LNG 공급을 해준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다. 단순한 판매자를 넘어
과거의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했다. 한쪽은 점령했고, 다른 한쪽은 무너졌다. 전쟁이 끝나면 결과도 명확했다. 그러나 오늘의 전쟁은 다르다. 전쟁이 끝나도 일방적 승자는 없고, 일방적 패자만 남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입은 국가와 국민들만 남는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을 축으로 한 전쟁은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갈등은 단순한 국가 간 충돌을 넘어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으로 확산되며 중동 전체를 흔들고 있다. 전면전이라는 선언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면전에 가까운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전쟁은 하나의 전선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여러 층위의 충돌이 동시에 전개되는 다층적 전쟁이다. 국가 간 충돌, 대리전, 해상 위협, 경제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며 전쟁의 범위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미사일과 드론이 바꾼 전쟁의 경제학 이번 전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미사일과 드론이다. 미사일은 국경의 의미를 무력화했다.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상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은 전쟁의 공간적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드론에서 나타난다. 드론은 전쟁의 비용 구조를 뒤집고
[엔트로피타임즈=이상현 편집위원] 러시아에서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된 2022년 3월, 한국에서는 “푸틴이 사망했다”는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4월1일 ‘만우절’에 효과를 극대화 한 이 가짜뉴스는 각종 SNS·카페·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 등을 통해 퍼졌고, 가짜뉴스는 4월1일 만우절을 앞두고 두 차례 히트를 쳤습니다. 가짜뉴스는 <[속보] 푸틴, 크림렘궁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러 국영매체 "모든 방법 동원해 타살 확인 중”>이라는 조잡한 제목을 달았습니다.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라면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우선 ‘크렘린’을 ‘크림렌’으로 잘못 표기했지만, 발견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방법 동원해 타살 확인 중”이라는 표현도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온라인 뉴스플랫폼 URL 모방 가짜뉴스 링크는 높은 클릭을 얻은 뒤 몇시간만에 곧바로 삭제되기 때문에 증거는 해당 가짜뉴스를 캡처한 것으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가짜뉴스가 히트를 칠 수 있었던 것은 뉴스 포맷과 디자인, 심지어 도메인(news‑naver.kr)도 너무나 진짜 뉴스의 형식을 갖췄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에서 뉴스 유통채널 비중이 가장 높은 네이버의 뉴스 코너
[엔트로피타임즈=임종순 칼럼니스트] 주말 탄천을 걸으며 평화로운 풍경을 만끽하다가 문득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서아시아(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지구촌 전체가 에너지 대란으로 매일 매일 '난리 북새통'이기 때문이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았던 태국은 에너지 절약을 위하여 공무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카타르발 천연가스(LNG) 공급 단절로 공장 문을 닫았고, 인도에서는 식당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우리의 평화로움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우리가 혹 뭔가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게 평화로운 탄천 산책을 방해한 우려의 실체였다. 허물어진 1·2단계 : 생존과 안전 없는 비전의 허상 매슬로우는 개인의 욕구는 생존(1단계)과 안전(2단계)이라는 하위 욕구가 충족돼야 비로소 자아실현(5단계)과 같은 상위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속담에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에 얼추 부합한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는 국가의 호흡이자 생존을 지탱하는 1단계, 2단계 욕구의 토대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밋빛
최근 몇 년 사이 인공지능(AI)은 산업의 도구를 넘어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힘으로 등장했다. 전쟁에서는 자율 드론이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고, 기업에서는 알고리즘이 투자와 생산을 결정한다. 이제 AI는 더 이상 보조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체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전환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다. AI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가가 아니라, '그 AI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지금의 AI는 소수의 빅테크 기업과 국가 권력에 집중되어 있다. 데이터와 연산 능력, 알고리즘이 결합된 이 구조는 과거 산업혁명기의 자본 집중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 권력 구조에 대한 사회적 통제 장치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리고 권력은 언제나 책임의 문제를 동반한다. AI 시대에 ESG 역할 가능한가 ? 이 지점에서 ESG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ESG는 기업의 책임을 평가하고 보고하는 체계로 발전해 왔다.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를 기준으로, 기업 활동을 점검하고 공시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2022년 겨울, 아열대의 섬 대만에서 들려온 비보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갑자기 찾아온 혹한의 날씨속에 수백 명의 동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단순히 기상 이변의 비극을 넘어 한 국가의 에너지 시스템과 인프라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대만에 가스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가스를 전력과 난방으로 전환해 국민을 보호할 '구조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핵심이었다. 미국과 이란간 전쟁과 중동의 위기는 대만에 또다른 시련을 안겨준다. '14일의 골든 타임', 대만의 아킬레스건 대만의 에너지 구조는 '위태로운 외줄타기'와 같다. 전력 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액화천연가스에 의존하면서도 이를 저장할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만의 LNG 비축량은 고작 11~14일분 내외다. 만약 지정학적 갈등으로 해상 봉쇄가 발생한다면, 대만의 산업과 민생은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멈춰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만의 TSMC는 소요되는 에너지의 전량을 LNG 발전기로 생산한 전력에 의존한다. 이는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국가가 '경제성'과 '탈원전'이라는 명분에 매몰되어 '안보'라는 기초 체력을 소홀히 했을 때 어떤 위기에 직
[엔트로피타임즈=이상현 편집위원] 2026년 3월11일은 기자가 지금껏 해오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깊이 절망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이런 일이 처음 있지 않았지만, 엄습한 무력감이 뇌의 사고 진전 자체를 가로막았다. 완벽한 절망감, 그 자체였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15개국이 11일(뉴욕 시간) 서아시아(중동) 분쟁 사태와 관련한 2개의 결의안을 처리한 일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책임을 빼고 이란만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15표 중 13표)를 얻어 채택됐다. 채택된 결의안에는 당초 이스라엘과 미국의 책임에 대한 언급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표결을 위해 확정된 최종 수정안에서는 그 내용이 빠졌다. 이란이 걸프만 주변 친미 국가들에 있는 미군기지를 공격한 점, 이 과정에서 자국 군인과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점 등을 이유로 이란을 규탄하는 내용이 빼대다. 한국도 이 안을 공동제안한 135국 중 하나다. 반면 유엔 안보리는 이날 러시아가 제출한 결의안을 부결시켰다. 러시아 결의안에는 ▲특정 국가가 언급되지 않았고 ▲즉각적인 휴전 필요성 ▲전쟁 이해관계국들이 조속한 협상 촉구 ▲민간인 보호 등이 적시돼 있었다. 너무나 상식적
'밀림의 왕' 타잔이 나무 사이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비결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바로 새로운 넝쿨(줄)을 완전히 움켜쥐기 전까지는 절대 기존의 줄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타잔이 공중에서 새 줄을 잡기도 전에 기존 줄을 놓아버린다면, 그는 추락하여 늪 속의 악어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최근 중동 분쟁으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혼란은 우리에게 이 ‘타잔의 법칙’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기후변화 대응과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우리가 가야 할 ‘새 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줄을 온전히 잡기도 전에 우리 경제의 근간인 ‘기존 줄(석유·가스)’을 소홀히 다룬다면, 우리 경제는 에너지 수급 불능이라는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줄, 중동의 경고 현재 우리가 쥐고 있는 줄은 몹시 흔들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 위기와 카타르의 불가항력 선언으로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0%가 즉각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걸프 지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시장은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에너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와 LNG는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연료’라는 이미지에
"뭣이 중헌디?" 2016년 영화 <곡성> 속 어린 소녀의 날카로운 일갈은 10년이 지난 2026년 오늘,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심장을 향해 비수처럼 꽂힌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양상 속에 이란이 ‘세계의 숨통’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는 말 그대로 곡성(哭聲)이 터져 나오고 있다. 유가는 순식간에 배럴당 $80를 돌파했고, 물류는 마비됐다. 이 아비규환의 정점에서 우리는 뼈아픈 질문을 마주한다. 우리 경제에 진정으로 ‘중헌 것’은 1원이라도 싼 가격표였나, 아니면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에너지 안보였나. 경제성의 함정, 안보의 절벽 우리는 그동안 ‘경제성’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었다. 2025년 기준, 우리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72.4%에 이른다.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전체 수입량의 30% 이상을 중동의 좁은 해협에 의지해 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중동산이 ‘가장 싸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 ‘경제적 선택’의 대가는 혹독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 당장 국내 정유사와 발전소는 가동 중단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 에너지는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의 혈액이다. 100원을 아끼려다
지난 주 미국의 공격으로 촉발된 미국-이란-이스라엘 전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충격적이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지도자를 정치 외교적 방법이 아니라, 살상무기 공격으로 무참히 살해하는 것이 21세기 문명시대에 맞는지 의문이고, 실수든 오작동이든 이란의 어느 초등학교를 공격하여 165명이 어린이를 사망케 한 것도 아연실색하게 한다. 전쟁에 깊숙이 개입하는 AI 또 다른 전쟁 양상의 큰 변화는 AI 기술이 전쟁에 깊숙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AI 정책 결정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AI 안전을 핵심 가치로 내세워 온 앤트로픽(Anthropic)사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의 갈등이다. 앤트로픽사는 자사 모델 클로드(Claude)의 사용 범위를 두고 대량감시나 완전 자율살상무기 체계에 활용되는 것에 강한 제한을 두려 했고, 정부는 국가안보 목적의 폭넓은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한 것이다.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는 앤트로픽사를 배제하고, OpenAI와 계약을 하면서 AI 기술을 군사적으로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다. AI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