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입어야 할 고통을 입는다.”
지금의 국제 상황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 있을까? 무려 2400년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글이다. 패권을 쥐고 있던 그리스가 전쟁 상대인 약소국 멜로스 동맹 협상단에게 한 말이다.
되풀이되는 역사, 소환된 2,400년 전의 비극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전쟁 당사자는 물론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에너지 공급이 어려운 아시아, 아프리카 약소국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4년 전, 러우전쟁으로 2차 오일쇼크 보다 더 큰 가스 대란의 공포 속에서 잠 못 이루며, 뒤척였던 기억이 선하다. 아니나 다를까, 전쟁의 결과는 전기·가스 요금 폭등, 관련 공기업의 천문학적 적자라는 혹독한 대가로 돌아왔다.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 속에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시 펼친다. 멜로스 대화편의 냉혹한 현실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는 사실을 중동의 포화 속에서 다시 한번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후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멜로스의 실수와 마크 카니의 경고
아테네에 저항했던 섬나라 멜로스는 스파르타 원군이라는 ‘희망 회로’에 기댔지만, 스파르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국제 관계에서 ‘동맹의 선의’나 ‘전략적 모호성’이 각국의 비정한 실리 앞에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다보스에서 강조했듯,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제 규범을 무시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마크 카니는 “혼자 있으면 멸망한 멜로스가 되지만, 뭉치면 강대국도 무시할 수 없는 ‘제3의 세력(Block)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선택 : 실력 있는 자주(自主)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약자가 아니다. 2026년 현재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자주적 입장’은 다음 세 가지 실력에서 나와야 한다.
먼저 에너지 안보의 자립이다. 그동안 강조했던 에너지원 다원화와 수요 관리는 이제 생존의 문제다. 중동에만 목매는 구조를 탈피, 호주와 캐나다와 액화천연가스(LNG) 협력을 꾀하고 러시아와도 자원 협력을 서둘러야 한다. 이처럼 공급망을 지정학적 위험으로부터 분산시키는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
두번째로 '기술 패권을 통한 불가결성'이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축이 돼야 한다. 이로써 강대국이 우리를 공격할 때 그들도 치명적인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기술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맞막 세번째는 전략적 방산 연대다. 최근 캐나다 잠수함 사업, 폴란드 군사협력과 같은 협력은 단순한 수출을 넘어, 우리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안보 연대 블록을 구축하는 자주적 억제력의 핵심이다.
연대가 곧 자주다
이제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마음으로 불편하더라도 선제적으로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그 방울은 이제 ‘중진국 간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캐나다와 호주, 인도와 같은 가치 공유국들과 손잡고 경제·에너지·군사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주적 행보다.
역사는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멜로스의 비극을 교훈 삼아, 실용적이고 영리한 연대를 통해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중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2400년 전 아테네 사절단이 비웃었던 멜로스의 ‘막연한 희망’이 아닌, 우리의 ‘실질적인 국력’으로 평화를 지켜내야 할 때다.

임종순 칼럼니스트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