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임종순 칼럼니스트]
주말 탄천을 걸으며 평화로운 풍경을 만끽하다가 문득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서아시아(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지구촌 전체가 에너지 대란으로 매일 매일 '난리 북새통'이기 때문이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았던 태국은 에너지 절약을 위하여 공무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카타르발 천연가스(LNG) 공급 단절로 공장 문을 닫았고, 인도에서는 식당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우리의 평화로움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우리가 혹 뭔가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게 평화로운 탄천 산책을 방해한 우려의 실체였다.
허물어진 1·2단계 : 생존과 안전 없는 비전의 허상
매슬로우는 개인의 욕구는 생존(1단계)과 안전(2단계)이라는 하위 욕구가 충족돼야 비로소 자아실현(5단계)과 같은 상위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속담에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에 얼추 부합한다.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는 국가의 호흡이자 생존을 지탱하는 1단계, 2단계 욕구의 토대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밋빛 비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그 기반이 되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고민은 ‘경제성’과 '좌초자산'이라는 리스크 논리에 밀려 뒷전이 됐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지난 10여 년간 신규 해외 자원 개발에 손을 놓고 있던 사이 우리의 '생존 기반'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15년 전의 '욕'을 이겨낸 오늘의 평화
지금 우리가 중동발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큰 혼란 없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2011년 이전에 투자했던 호주, 캐나다, 모잠비크의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들 덕분이다. '방만 경영'이라며 욕을 먹었던 그 사업들이, 1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지켜주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LNG 저장, 공급 설비에 대한 투자가 죄초 자산이라는 비난도 받았었다. 에너지 자원과 생산, 공급 설비는 위기때 우리를 지켜주는 소양강 댐과 같은 것인데도 말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LNG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뭇 높다. 산유국인 베트남이 우리에게 비축 원유를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무엇이 우리를 지키고 있는가? 최근 사태는 우리가 소홀이 했던 1·2단계 욕구의 엄중함을 보여준다.
전략적 기획의 본질: 기반을 인식하는 용기
최근 미국은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카르그 섬(Kharg Island) 점령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우리에게 함대 파견과 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유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비대칭 경제 전쟁으로 맞서고 있다. 이러한 고차방정식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내놓아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미래의 아름다운 비전과 꿈을 설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전략적 기획의 시작은 "현재 내가 서 있는 삶의 기반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에너지는 생존과 안전의 문제다. 하위 단계 욕구의 기반이 흔들리는데 상위 단계의 비전을 노래하는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무엇이 중헌디?"
왜 우리는 위기가 닥쳐야만 비로소 생각을 시작하는가? 공기업의 적자로 위기를 모면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가? 알래스카와 사할린, 신규 에너지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합리적이고 냉정한가. 차갑게 주판알을 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생존의 토대를 다지는 '전략적 결단'이 시급하다.
경기 동남부에서 한강으로 파고드는 탄천의 물결이 가만히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생존의 기반을 잊은 국가에게 미래의 비전은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탄천도 지금처럼 맑아지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하천이다.
이제라도 매슬로우 피라미드의 밑바닥, 에너지 안보라는 기초를 다시금 단단히 다져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