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이상현 편집위원]
“역대 정부에서 수많은 정권 교체에도 우주항공 정책에 관한 큰 변화는 없었고, 초당적으로 이 분야 발전을 지원해 온 것 같습니다.”
최근 많이 화두가 돼 국가 과제로 추진 중인 ‘재사용 발사체’ 기술개발 책임자인 박순영 우주할공청 재사용발사체 프로그램장(과장, 공학박사)이 20일(서울 시간)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기자와 만나 들려준 얘기다.
박순영 과장은 한국우주항공청(KASA) 개청과 함께 청 산하 연구소로 편입된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출신. 2013년 러시아와 협력해 진행한 나로호 발사 현장에서 근무했었던 우주 발사체 전문가다.
러시아 기술에 미국인 지휘로 다진 우주행 발판
박 과장은 "당시 추진체 1단은 러시아에서, 2단은 우리나라에서 각각 개발했던 국제 협력프로젝트를 통해 발사장에 대한 역량들을 확보하는 등 우주 발사체 개발에 대한 전주기를 경험했다"고 밝혔나. 그러면서 “이런 경험을 활용해 이후 독자 발사체 누리호를 개발, 2021년 첫 발사 실패 후 2022년 2차와 2023년 3차, 지난해 4차를 잇따라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2024년 5월27일 우주항공청 시대를 열었다. 오는 5월이면 개청 2주년을 맞는 우주청은 상업화나 민간참여를 화두로 한 우주정책 기획(뉴스페이스)을 담당하는 정부 주무부처다.
윤석열 정부는 미 항공우주국(NASA)와 백악관 등 미국 연방 정부에서 30여년간 우주항공 분야 고위급 실무 간부로 일했던 한국계 미국인 존리((John Lee)를 초대 우주항공임무본부장(부청장급)으로 임명했다. NASA에서 태양물리학(heliophysics)과 지구관측, 공동위성 프로그램 등 대규모 과학·위성 프로그램을 직접 관리한 경험이 있다.
존 리는 한국형 우주항공 R&D 체계와 조직 구조를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한국 우주항공정책의 틀을 잡아준 인물로 평가된다. 우주항공 연구개발(R&D)·산업 육성 전략을 수립, 국내 연구기관·대학·민간기업과 협력 채널을 구축하는 한편 우주 프로그램·임무를 설계하고 이를 위한 조직 문화를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우주 전담 부처 설립목적과 존재 이유를 “기관·산업·학계 간 협업 구조 구축” 하기 위해 ‘임무 중심’ 프로젝트 관리 문화를 KASA에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박순영 과장은 “존 리 본부장은 화이트보드 앞에 모여 선 채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토론하는 회의를 자주 했다”면서 “한국 공직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장면으로, 자율적이고 활발한 우주청 조직문화 수립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 과장에 따르면, 존리 본부장은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항상 한국말로 소통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무조건 영어로 말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한미군사동맹은 지정학적 대기권…그러나 우주는 넓다
한국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우주항공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과 여건, 주요 동력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군사안보와 밀접한 우주 거버넌스를 고려할 때 미국과의 군사동맹 관계인 한국에게는 여전히 유무형의 제약이 존재한다.
한국은 하지만 지구 고도 100km 이상의 우주공간은 공해(open water)와 같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우주와 대기의 경계선인 고도 100km 지점을 ‘카르만 라인(Karman Line)’이라고 부른다. 한국 정부는 이 선을 중심으로 달라지는 지정학적, 과학기술적 차이를 파고 들었다. 결국 민간주도의 기술・사업 개발 환경조성 등 굵직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비밀영역인 군사용 우주기술은 민간의 곳을 빌려쓰는 얼개로 잡았다. 어떤 지정학적 도전에도 쉽게 해체되지 않는 얼개다.
한국의 경우 대기권 안에서 이뤄지는 육상・해상・공중 모든 활동이 한미 군사동맹의 제약을 받는다. 대기권 안에서 이뤄지는 사진・영상 촬영은 타국의 주권(sovereinity)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고도 100km 이상에서는 어떤 국제법적 제재도 없다.
물론 지구에 중앙정부가 없으니, 국제법이라는 것은 실상 이행을 강제할 수 없는 국제협약을 의미한다. 하지만 국제협약을 어기면 유엔 제재 또는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개별제재를 받을 수 있다. 기본법 노릇을 하는 ▲우주조약 (1967)에서는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 △(공간)영유금지 △우주활동에 대한 국가책임 △인류공영의 원칙 등을 명시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듬해 ▲우주비행사의 구조 및 우주물체의 반환에 관한 ‘우주구조반환협정(1968)을 맺은 데 이어 ▲우주물체에 의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발사국의 국제적 책임을 규정하는 우주손해책임협약(1972) ▲우주물체의 등록 및 식별을 위한 우주물체등록협약(1975), ▲달 협정(1979) 등을 잇따라 체결했다. 미 NASA는 2020년부터 달과 우주 탐사활동에 대한 원칙을 다루는 국제규범 ‘아르테미스 약정’을 내놓았다. 한국도 2021년 이 약정에 서명했다.
우주배치 금지는 핵무기만? 아니면 모든 무기?…미러간 우주패권 기싸움
미국은 대기권 내에서 행사해온 막강한 군사패권을 우주공간에서도 당연히 갖고 싶어한다. 우주공간을 군사화, 정치화 해서 미국 주도로 통제하려고 부심해 왔다.
미국은 우주공간에 핵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일체의 무기 배치를 금지하자”는 대안을 제시,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 처리가 불가능해졌다. 미국은 재빨리 다수결 표결처리가 가능한 유엔총회 안건으로 처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미국은 이밖에도 이미 많은 포석을 깔아놨다. 미국 대통령 도서관에서 결성된 G7 국가들은 1987년 비공식 국제수출통제체제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MTCR)’를 구축했다. 물론 MTCR이 구속력 있는 조약(Treaty)은 아니다. 회원국 간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인 정치적 합의(Understanding)다. 총중량 500kg급 핵・화학・생물학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300km 이상 운송할 수 있는 미사일이나 로켓, 무인기(UAV) 관련 기술의 확산을 막기 위한 협약이다. 한국, 러시아 포함 35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MTCR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을 만들어 자국기술의 외국이전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조약 지위를 부여하지 않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합의를 근거로 자국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오로지 미국만이 법적으로 조약 내용을 실질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게 보장한다.
미국은 경제・통상 측면에서 이미 타국의 우주개발을 규제할 수 있는 장치를 모두 해둔 상태다. 미국 ‘대외무역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따라 중국・이란・북한・러시아 등 이른 바 ‘해외우려실체(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 국가들과 발사체와 위성 관련 교역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소형 위성용 발사체 제조 및 발사서비스 기업 이노스페이스의 김수종 대표는 1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즈니스 전략상 한국 기반 발사체를 국제 신인도가 있는 국가로 운송, 발사를 해야만 가능한 서비스 구조이기 때문에, 주요 부품들은 이란과 러시아, 북한처럼 국제 규제를 받고 있는 곳들과 거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략물자가 대거 포함된 발사체를 발사장이 있는 나라로 운반해서 발사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발사장과 수입국 모두 우주협약 가입국이어야 한다”면서 “브라질 발사장도 그런 점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관이 함께 쓰는 우주기술, 스스로 갖추려 안간힘
한국은 세계 11번째 스페이스클럽 가입 국가다. 우주 분야 후발국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이후 본격화 된 ‘새 우주(New Space) 정책’은 대기권 밖 우주공간에서 스스로 우주 영토를 확보해 나가려는 의지를 투사하고 있다.
수준 높은 반도체・로켓・위성 자체 제조역량을 밑거름으로 기존의 국가주도 우주개발의 한계를 시급히 극복, 민간과 정부가 협력해 빠르게 성과를 내려는 의지였다. 2024년 5월27일 개청한 우주항공청(KASA)은 ‘상업화나 민간참여를 화두로 우주개발 기획을 담당하는 정부 주무부처’임을 자처했다.
박재필 나라스페이스 대표는 “과거 정부 주도로 초대형 로켓과 위성 제조 및 발사하는 중후장대형 우주개발 틀(패러다임)에서 이제 경제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새 우주 틀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상업 위성의 발전은 총중량 25kg(국내에서는 100kg) 이하인 초소형 위성에서 가시화 되고 있으며, 한국이 이 분야 최고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덧붙였다.
관측과 통신 목적의 위성기술은 사실 군사용과 민수용의 경계가 모호하다. 지상 100km 밖 우주공간에서 상대국의 영토를 침해하지 않고 관측할 수 있다면, 관측된 특정 지점에 미사일 공격을 하는 데도 긴요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는 “초소형 위성은 주로 지구 관측과 식물작황관찰, 홍수(동남아), 산불 등 재난관측(적외선장비), 인공지능(ai) 사물인식 기술과 밀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재필 나라스페이스 대표는 “한중 접경 서해구조물이나 각국 항만 모니터링(선박 입출항 및 선박 변화), 이란 핵시설 타격 지역 전후 위상영상분석, 가자지구 건물붕괴 현황 분석, 공항의 모델별 항공기 식별 등도 위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그림자선단(Dark Fleet) 감시, 북한 개성공단 감시 등에도 소형위성을 활용 중이라고 밝혔다. 모두 군사・안보 분야에 활용되는 위성영상 분석서비스의 사례들이다.
상용협력운용 개념으로 민군 우주기술 공유
군사위성은 ▲관측 ▲통신 ▲시진트(신호탐지) 등을 위해 운용한다. 군사용으로 쓰는 초소형 위성 수요는 넓은 군사지역을 실시간 관찰하는 목적이 가장 일반적이다. 소형 위성은 또 민간 기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군사기술을 우주공간에서 시험할 때도 쓰임새가 긴요하다. 군사임무 자체가 군사비밀이라서 임무에 따른 위성의 제원은 다양하고 어떤 임무에 위성이 활용되는 지 역시 공개될 수 없다.
적외선 위성인 아리랑 위성 등이 군사적 목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스페이스 박 대표는 “정찰위성 제조, 발사, 운용, 데이터분석 등을 다 서비스 하지만 보안을 철저히 한다”면서 “과거 국방분야 기술을 민간이 일부 썼다면 지금은 국방 쪽에서 상용협력운용(joint commercial operation) 개념으로 민간 자산을 국방 안으로 인입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 나라스페이스는 독일과 스웨덴, 네덜란드 등과 군사 위성 계약을 이미 맺었다.
한국은 이미 군 정찰위성 등 중형급 위성을 실어 나르는 누리호 4차 발사까지 성공했고 올 6월 5차, 2027년에 6차 발사가 계획돼 있다. 광역 감시・정찰용 정지궤도위성(천리안)이나 저궤도 군정찰 위성(아리랑) 등도 오래전부터 운용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들까지 소형위성들을 다수 쏘아 올리고 있다.
반도체와 수소연료전지, 이차전지 등에서 수준급 기술을 확보한 한국이 비록 늦게 우주시대 경쟁에 합류했지만, 고유의 ‘빨리 빨리’ 정신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우주 영토를 점해 나갈 지 주목된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