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이상현 편집위원] 2026년 3월11일은 기자가 지금껏 해오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깊이 절망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이런 일이 처음 있지 않았지만, 엄습한 무력감이 뇌의 사고 진전 자체를 가로막았다. 완벽한 절망감, 그 자체였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15개국이 11일(뉴욕 시간) 서아시아(중동) 분쟁 사태와 관련한 2개의 결의안을 처리한 일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책임을 빼고 이란만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15표 중 13표)를 얻어 채택됐다. 채택된 결의안에는 당초 이스라엘과 미국의 책임에 대한 언급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표결을 위해 확정된 최종 수정안에서는 그 내용이 빠졌다.
이란이 걸프만 주변 친미 국가들에 있는 미군기지를 공격한 점, 이 과정에서 자국 군인과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점 등을 이유로 이란을 규탄하는 내용이 빼대다. 한국도 이 안을 공동제안한 135국 중 하나다.
반면 유엔 안보리는 이날 러시아가 제출한 결의안을 부결시켰다. 러시아 결의안에는 ▲특정 국가가 언급되지 않았고 ▲즉각적인 휴전 필요성 ▲전쟁 이해관계국들이 조속한 협상 촉구 ▲민간인 보호 등이 적시돼 있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의안이 외면 당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 유엔 러시아 대사도 기자처럼 절망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이 직장 상사의 지시에 따르듯 표결에 임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미국의 최초 폭격으로 꽃 같은 이란 학생 175명이 죽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지구촌 전체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세상은 오로지 내 지갑에서 얼마나 더 연료비로 나갈 것인지만 중요하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에게도 그 가련한 어린 생명들은 인권의 대상인 ‘민간인’ 축에도 못드는 생물학적 동물일 뿐이다.
세계정부가 없는 가운데 지구촌 의회 노릇을 하고 있는 유엔의 한계를 또 한 번 보여줬다. 트럼프를 악마 또는 천사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는 역사에 기리 남을 정치지도자다. 세계가 ‘공동체’가 아닌 ‘정글’임을 깨닫도록 참교육 시킨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앵글에서 보자면, 미국이 초격차 단극 패권을 잃을 때 ‘공동체’라는 신화는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 된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다시 미국을 유일한 패권자로 추앙할 것인가.
호르무즈 봉쇄는 이란이 한 짓인가?
11일 유엔 안보리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결의안은 바레인・쿠웨이트・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을 대표한 바레인과 요르단이 대표로 제출한 결의안(결의번호 안보리 결의 2817(2026))이다. 이란의 GCC 회원국 공격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란은 GCC 회원국 영토가 아니라 미군기지(미국 영토)를 공격했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물론 이란이 공격 과정에서 정유시설을 직접 겨냥한 점, 의도하지 않게 주거지역 등 민간인 지역에 피해를 입힌 점은 규탄 받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GCC 결의안에 적시된 “이란이 해상 교역에 개입하기 위한 위협·도발·행동,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국제 항행의 폐쇄·방해·기타 간섭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조치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는 진실의 일부다. <뉴욕포스트>의 14일치(미국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는 “사실 호르무즈 해협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다만 “우리 적들, 우리를 공격하는 국가들과 그 ‘동맹국’들의 유조선과 선박에 대해서만 폐쇄돼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그 ‘동맹국’에 속한다.
다른 ‘불편한 진실’도 있다. 다국적 재보험회사들이 “기존 계약이 어땠든, 호르무즈 지역을 지나다가 사고가 나면 보험금을 못받을 줄 알아라”고 선언했다.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이유 때문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는 표현은 여전히 진실의 일부다.
기자를 좌절케 한 정점은 “안보리는 국제법을 포함한 국제 인도법상의 의무를 완전히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는 GCC 결의안의 표현이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버젓이 쓸 수 있을까. 미국은 최초 기습공격으로 175명의 꽃같이 화사하고 여린, 무고한 이란 학생 175명을 죽였다. 미국은 이후 “이란군이 미국 미사일로 쏜 공작”, “과거 이란혁명수비대(IRGC) 건물 정보 업데이트 오류’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 공식사과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참담한 학살을 ‘국제법을 포함한 국제 인도법상의 의무’와 전혀 무관하게 취급하고 있다.
표결 결과는 좌절의 ‘화룡점정’이었다. 15개 안보리 이사국들 중 13개 나라가 이 GCC 결의안에 찬성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기권했다.
휴전과 지역긴장상태 탈피를 주장한 러시아 결의안 부결
같은 날 러시아가 상정한 별도 안보리 결의안은 부결됐다. 특정 국가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고 중동 전역의 즉각적인 군사행동 중단과 극단적 대치를 벗어나자는 게 러시아 결의안의 뼈대였다. 미국의 최초 이란 공격은 이란과 핵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기습적으로 이뤄졌지만, 그런 얘기도 죄다 뺐다. 잘, 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전쟁부터 멈추자는 취지다. 다음이 러시아 결의안 전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동 및 그 너머에서 지속되는 적대행위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인명 손실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모든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 안보리는 모든 관련 당사자에게 군사 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지역 및 그 밖의 지역에서의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 안보리는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를 겨냥한 모든 공격을 규탄하며, 국제인도법에 따라 민간인과 민간 물적 시설을 보호해야 할 당사자들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안보리는 이 지역 모든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보리는 모든 당사자에게 어떠한 지체 없이 협상으로 복귀하고,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전면적으로 활용할 것을 강력히 독려한다.”
바레인안과 달리, 특정 가해국·피해국을 지명하지 않았다. 휴전·군사행동 중단·협상 복귀를 포괄적으로 요구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표결 결과,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 4개국만 찬성했다. 라트비아와 미국은 반대표를 던졌다. 바레인과 콜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라이베리아, 파나마, 영국 등 9개 나라는 기권했다. 러시아 결의안은 안보리결의 채택요건인 최소 9표에 미달, 부결됐다.
세계는 ‘공동체’ 아닌 ‘정글’임을 일깨워 준 트럼프
기자는 미국의 치부와 세계의 ‘약육강식’ 질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비꼬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를 썩어 문드러진 서로마제국의 중흥을 위해 로마 전체를 불태우려 했던 소설 <로물루스 대제>의 주인공에 견주기도 했다. 그가 실제로 어떤 동기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트럼프가 미국과 지구촌의 구역질 나는 기득권에 맞서왔던 측면을 눈여겨 봐 왔기 때문이다.
이번 유엔 안보리 표결 또한 유엔의 부실한 시스템을 비웃게 만드는 좋은 사례다. 유엔 헌장은 국가가 타인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주권국가의 영토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유엔 헌장 제2조 4항에 위배된다.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영토를 공격, 민간인 사상자와 재산 피해를 불렀다.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영토, 중동 내 미군기지 등을 공격했다. 외교협상 진행도중 상대국을 공격하는 행위는 유엔헌장 제2조2항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
미국이 ‘선제적 자위권’을 내세웠지만 이 개념은 국제법상 확립된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란 내 핵시설을 공격한 것은 큰 환경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제네바 협약 추가 의정서’를 위반하기도 한다. 유엔 안보리는 이런 얘기를 하나도 하지 않은채, 이란의 책임만 물었다.
K.M. 로그비노프 러시아 외무부 국제기구국장은 한 TV인터뷰에서 “서양국가들이 유엔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만들려고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그들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국제 법적 원칙을 무시하고, 유엔 총회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유엔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그 권위도 손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실리 네벤자 주 유엔 러시아 대사는 “GCC 결의안은 편향됐고, 중동평화에 도움이 될 리 없어 러시아는 기권했다”고 밝혔다. 네벤자 대사는 구체적으로 “이란 민간인들에게 어떤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보이는 GCC 결의안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엔의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트럼프
네벤자 대사는 “일부 동료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힘과 지혜를 갖지 못했다”며 “그들 중 몇몇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그들은 방금 안보리를 통해 전쟁 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모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기회를 거부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다시 한번 그들의 국제법, 유엔헌장 및 평화에 대한 모든 거창한 발언이 공허한 말만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중대하고 명백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폭압의 주체가 아니면서도 폭압 시스템에 부역하는 약자들의 협량하고 야비한 얼굴을 직시하는 것은 더 없이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다. 대다수 지구인들은 바야흐로 폭압의 질서에 익숙해지다 못해 자기검열이 일상화 됐다. 폭압의 시스템에서 생존이 급급한 피억압자들의 비굴한 행보는 신냉전시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돼 가고 있다.
지구인, 인류의 지배구조가 실상은 이렇다는 점을 보여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진정한 인류문명의 기여자다. 인류가 ‘약육강식’의 고유 질서를 교묘히 감추고 ‘규칙기반의 세계질서’니 ‘가치를 함께하는 우방’이니 입바른 잡소리로 약소국들을 착취해온 역사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인권이사회, 안전보장이사회 등 그럴듯한 이름의 유엔이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 표결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트럼프의 심정은 알마나 통쾌했을 것인가. 세계는 정숙하고 자애로운 신사들의 토론장이 아니라 바로 ‘정글’이라는 점을 일찌기 설파했던 트럼프의 혁명가적 업적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거짓’과 ‘위선’이 판치고, ‘매국’과 ‘공익의 사익화’가 판치는 세상을 <뉴욕타임즈>가 멋지게 비판하며 마치 ‘규칙기반의 세계’가 가능한 것처럼 미혹하는 세상이 지속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의 도움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인류 지속가능성에 이로울 것인가.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