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마세요 재활용하세요” 폐열 재활용 지원 박차

천덕꾸러기 폐열과 공정 부산물, 타 기업 활용 체계 구축키로
‘생태산업개발 순환형 네트워크 설비 및 사업화지원사업’ 컨소시엄 모집

 

[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유럽의 ‘탄소 관세’ 도입으로 탄소 배출이 곧 비용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본격화된 가운데,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버려지던 폐열과 공정 부산물을 다른 기업이 다시 활용하는 ‘순환형 산업’이 새로운 대응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 정부, 기업 협력형 순환 산업 지원 사업에 41억 투입
산업통상자원부는 폐열과 부산물 등을 다른 기업이 연료나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생태산업개발 순환형 네트워크 설비 및 사업화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29일 밝혔다. 총 41억5000만원 규모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컨소시엄에는 최대 20억원까지 지원된다. 설비 구축과 온실가스 감축량 산정·검증 등에 필요한 비용의 최대 70%까지 보조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개별 기업이 아닌 ‘연결’이다. 폐열이나 부산물을 제공하는 기업, 이를 가공하는 중간 처리 기업, 최종적으로 활용하는 수요 기업이 하나의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한다. 여기에 산업단지 입주기업이 최소 1곳 이상 포함되도록 한 것도 기업 간 자원 순환 구조를 실제로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정책은 최근 강화되는 글로벌 탄소 규제 흐름과 맞물려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 관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는 것이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배출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발생한 자원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은 상당한 에너지 가치를 지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산업 부문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이 열 형태로 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의 상당량이 회수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다. 철강이나 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폐열은 인근 공장에서 증기나 전력으로 활용될 수 있고, 공정 부산물 역시 시멘트 원료나 화학 소재 등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버려지는 에너지’를 다시 활용할 경우 기업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탄소 배출량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특히 탄소 배출량에 따라 비용이 부과되는 구조에서는 이러한 절감 효과가 곧 수익성과 직결된다. 과거에는 폐열과 부산물이 단순한 처리 대상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으로 재인식되고 있는 이유다.

 

◆ 덴마크 칼룬드보르그가 보여준 산업 공생 구축에 매진해야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 창조를 더한다는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는 해당 사업은 국내의 경우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해외에선 이미 이를 구체화하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종의 산업 공생 모델인 셈인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덴마크 칼룬드보르그(Kalundborg) 산업단지다. 세계 최초의 산업 공생 모델로 꼽히는 칼룬드보르그 산업단지는 1960년대 후반부터 기업 간 부산물과 에너지를 공유하는 구조를 구축해왔다.

 

현재 칼룬드보르그에는 발전소, 제약사, 화학기업, 시멘트 업체 등 10여 개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해 수십 개의 자원·에너지 흐름을 교환한다. 발전소에서 발생한 증기는 제약·화학 공정의 열원으로 공급되고, 발전소 부산물인 석고는 시멘트 원료로 활용된다. 또한 정제수와 폐수는 인근 기업에서 재사용되며, 폐열은 지역 난방으로 공급돼 주민 생활비 절감에도 기여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칼룬드보르그는 연간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수십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 사용량도 수백만㎥ 이상 절약해 환경적·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달성했다. 무엇보다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운영되며 안정적인 협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 벤치마크로 평가된다.

 

이번 정부의 지원 사업 발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델이 분명해보이는 칼룬드보르그 산업단지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순환형 산업 정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를 그대로 구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칼룬드보르그가 수십 년에 걸친 기업들의 자발적 협력과 장기적 투자로 공생 구조를 구축해온 반면 한국은 이제 막 정부 보조금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 지원을 넘어 장기적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성 확보 역시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이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밀고 나가기엔 기업의 부담이 너무도 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구호상의 지원이 아닌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실현 전략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예컨대 산업단지 단위로 자원 순환을 구축해 물리적 거리와 이송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그것. 나아가 탄소배출권거래제, RE100, ESG 경영 등 국내외 규제·경영 트렌드와 연계해 기업 참여 유인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궁극적으로는 폐열과 부산물을 단순히 ‘다시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초에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공정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단일 기업의 효율 개선을 넘어 산업단지 전체를 하나의 ‘자원 순환 네트워크’로 전환하는 시도이며 기업 간 경쟁을 넘어 협력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산업 모델로 해석될 수 있다.

 

출발이 늦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가는 이들의 등만 바라보아선 안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어느 때보다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자원을 순환시키는 산업 생태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시급하다.

 

덴마크 칼룬드보르그 사례가 보여주듯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는 구조적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탄소 비용’은 일시적 부담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방향성 자체는 분명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장기적 비전과 기업 참여를 이끌어낼 확실한 유인책이다. 이번 정부의 사업이 그를 이끄는 견인차로서 움직일지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