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網] “한반도 평화정착이 최우선”…강대국 ‘러시아’의 시선

10대 군사강국중 4곳이 동아시아 운집
미일한 vs 러북중 양극화 ‘최악의 구도’
북, 리비아・이라크・이란 통해 위협 실감 
“힘으로 현상변화 추구하는 CVID 최악”
러중한・러미한 동시협력 실용외교 진수
남북관계 개선 위해 러북관계 활용해야 

 

“(한반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당면 목표는 바로 현재의 위험한 교착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이다. 북한과의 어떠한 중간적·단기적·전술적 합의도 핵 전쟁이나 동북아의 고강도 긴장 상태 지속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대안이다.”

 

러시아 외교 싱크탱크 국제문제위원회 학술총괄역을 담당해온 학자 안드레이 코르투노프(Andrey Kortunov, 아래 사진)가 9일(서울 시간) 열린 ‘2026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평화 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날 포럼에서 만난 INSS 러시아 전문가 장세호 연구위원은 기자에게 “러시아 정치학자 이념 성향을 분류해보자면 코르투노프 교수는 ‘중도’에 속하며, 당연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강성 학자들의 목소리에 묻혔지만, 러시아 5대 정치학자 중 한 명”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에 지분 적은 러시아, 남북통일로 얻을 게 많다”

러시아에서 ‘중도’로 분류되는 정치학자의 논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표방하는 ‘실용주의’와 가깝다. ‘서방’과 ‘반서방’을 진영론・기계론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대신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섬세하게 분석하고 변화 가능성이 있는 관계변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면서 시기별로 대응하는 정치(외교)를 강조한다.

 

기자가 이 학자를 주목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부르는 러시아의 정치적 수사(rhetoric)를 걷어내고 러시아의 시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포럼에서 우선 “동·중유럽의 많은 국가와 달리,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를 동부 이웃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아시아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반도에 대해선 “러시아는 한반도 역내에 지분이 적어 현상유지, 즉 분단을 바랄 이유가 없다”고 담백하게 말했다. 러시아가 ‘통일’이라는 한반도 현상 변화로 얻을 게 많다는 솔직 담백한 고백이다. 

 

물론 당장은 중국이 가장 중요한 러시아의 경제 파트너라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중국에 러시아 경제가 너무 의존하면 전략적 위험이 커진다는 점도 숨기지 않았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남북통일을 통해 러시아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여지가 커진다”고 밝혔다. 또 “일본과 달리 남북한과는 영토분쟁도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학자는 북한의 ‘피포위 강박증(Siege Mentality)’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비아와 이라크, 베네수엘라, 이란 등 반미국가들의 참상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로 생존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두려움과 외부의 적에 대비하기 위한 절대권력이 서로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남북통일과 북한 민주화를 원한다면 북한이 느끼는 ‘위협’을 인정하고 그 두려움을 해소해 주는 한편 북한 스스로 경제와 정치를 선순환시키도록 주변국들이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껏 북한의 주요 이해관계국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러시아 학자의 지적이다.

 

지구촌 최대 화약고…냉전적 진영화로 위험 수위 최고조 

러시아 학자는 동아시아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 우려했다. 미일한과 러북중(가나다순)으로 양극화 되는 것은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진한다는 우려다. 실제 동아시아 역내 모든 국가들은 방위비를 급격히 증대시키면서, 가장 첨단이면서 동시에 불안정성을 높이는 군사기술까지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세계 방위비 지출 상위 10개국 중 5개국(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이 동북아 안보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향후 몇 년 동안 지정학적 상황이 일정 부분 개선되더라도, 군사화의 관성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거듭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현 시점에서 모든 잠재적 분쟁 당사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명확한 의도 없이 상황이 확전되거나, 상호 행동과 의도가 오판·오해되는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게 북한은 남다른 존재임에 틀림없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북한은 러시아에 대해 지상 전투를 포함한 실질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할 의지가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로 부각됐다”고 크렘린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북한은 아무리 군사동맹을 맺어도 스스로 결정하는 나라이고 러시아는 자존심이 센 북한을 더 존중해야 할 입장이 됐다는 점도 짚었다. 러시아 학자는 “북한은 일본이나 심지어 한국보다 훨씬 더 자주성과 독립성에 민감한 국가로, 러시아나 중국의 순응적인 대리인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러중 관계에 대해선 “러시아와 중국은 현재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식 군사동맹으로 격상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또 “북한 경제의 최대 후원국은 중국인 만큼, 러시아는 북·러 협력을 어느 수준까지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북강경책, 일방적 북한비핵화가 북한 핵무장에 되레 기회”

중국 학자도 북한의 자주외교가 북한 스스로의 운신 폭은 물론 단기 실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오 밍하오(Zhao Minghao) 중국 푸단대 교수(아래 사진)는 이날 포럼 토론에서 “북한은 윤석열 정부의 반북정책과 미중간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한반도 긴장의 촉매제들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잘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자오 교수는 북한은 긴장 요인들을 계기로 핵추진잠수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유도시스템, 드론 등 첨단군사기술 확보했고, 특히 드론을 활용한 전쟁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2기 내각의 정책우선순위와 추진 방법론은 바이든 정부 시절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데, 트럼프는 특히 바이든의 이념적 접근을 총체적 실패로 규정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해소를 통한 달러가치 수호와 제조업 귀환을 최우선 정책기조로 삼았다. 하지만 에너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침공, 미국이 강조해온 ‘규칙기반의 세계질서’라는 구호를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방법론적으로도 트럼프는 전임 행정부만큼 핵심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3자 협력에 헌신적이지 않다. 일본과 한국에 관세 및 대미투자라는 만만찮은 부담을 안겼다. 모든 나라에 대해, 미국의 비교우위를 보다 선명히 드러낼 수 있는 양자 협의 틀을 선호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2기 내각은 한반도 군사안보 밑그림에서 바이든 정부까지 지속된 미국의 ‘완전히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CVID)’라는 용어를 꺼낸 적도 없다. 

 

CVID라는 용어로 먹고 살던 많은 학자들과 관료들이 뭐라고 궁시렁 대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개인적인 친분만 농담처럼 언급했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의 핵군축 자체보다 더 중요한 목표”라고 전제, “(CVID 류의) 다른 입장들은 지나치게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단호히 배격돼야 한다”며 “이는 엄격한 비핵화 이행을 외교와 긴장 관리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CVID식 접근은 사실상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위한 도발”

한반도 주변국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당면 목표 역시 갈라진 한반도 문제를 푼답시고 분쟁의 불씨를 퍼뜨리는 짓거리를 배격해야 한다는 게 러시아 학자의 지적이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현재의 위험한 교착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북한과 무엇이든 중간적·단기적·전술적 합의라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 시점에서 모든 잠재적 분쟁 당사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명확한 의도 없이 상황이 확전되거나, 상호 행동과 의도가 오판·오해되는 위험”이라며 “정보교환과 상호참관, 군사 채널을 통한 소통 같은 다양한 형태의 신뢰구축 조치는 위기 억제와 관리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는 군부의 동의와 관여 없이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일련의 조치는 점진적으로 북한 군부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다만 국제사회가 핵을 가진 북한의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기술을 제3국에 이전하지 않겠다는 신뢰할 수 있는 보장을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면서 “북한이 지구촌 정치에서 책임 있는 행위자로 행동할 의지가 있음을 입증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 기술을 제3국에 이전하지 않도록 돕는 길은 국제사회가 북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을 보장하되 미이행때 제재를 하는 인센티브 체제를 제시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현재 핵·미사일 기술 확산이 북한의 국가적 집착이나 장기 전략이라기보다 경제적 이익 추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게 맞다면, 전 세계 원전 강국인 러시아·중국·한국이 북한에 매력적인 협력 패키지를 제안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1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중러 3자간 새로운 에너지 협력 패키지 구상을 북한에 제시하고 동시에 중장기 차원에서 새로운 유라시아 에너지 협력 다자협의체 마련 모색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평화통일 하려면 한러관계부터 복원해야

한국은 그동안 억지춘향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해 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해외 자동차생산라인을 구축한 데다 역내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던 현대・기아자동차를 ‘이중용도물품 수출금지’라는 포승줄로 스스로를 옭맸다. 한국돈 14만원에 되사는 조건으로 상트페테부르크 현재차 공장을 팔았지만, 끝내 되사지도 못했다. 막대한 손해를 봤고, 앞으로 차 제조를 대거 미국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연관 일자리와 조세수입 등 손해가 막심하다. 

 

한국의 언론들은 수년간 러시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를 번역해서 소개했고, 지금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관점에서 러시아를 비아냥 거리는 뉴스들로 90% 이상을 채우고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한국방송(KBS)은 모스크바 특파원을 철수했는데, 기자가 직접 정보공개 채널을 통해 이유를 묻자 “경영상의 이유”라는 답을 보내왔다.

 

많은 외교・안보 학자들은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은 러시아를 곱게 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시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학자가 밝힌 동아시아・한반도・북한・한국 등에 대한 러시아의 개별적・포괄적・통찰적 입장은 한국 외교안보정책 기조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해 한국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외교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러시아 전문가로부터 제기돼 왔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러시아학과장, 모스크바국립대 정치학 박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이해한다면 북러관계의 심화를 오히려 남북관계, 한러관계 개선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르투노프 교수는 “평양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파트너인 러시아는 북한 측이 보다 정확한 위협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은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