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외교 사령탑은 미중간 전략경쟁이 계속된다고 해서 어느 한 나라가 완전히 이기거나 또 지거나 하는 경우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지구촌 단일 패권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인정했다.
다만 미국이 지구촌에서 단일 패권을 잃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한국 외교의 정체성이 여전히 ‘서방과의 협력’이 핵심이라는 점은 분명히 재확인하면서 러시아에 대해 여전히 집단서방(collective western)의 용어와 서사(narrative)를 고수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9일(서울 현지시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에 참석, “26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는 한국이 원전연료의 3분의 1을 러시아제 연료를 쓰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미국측에 설득 근거로 제시했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한미원자력협상에 따라 허용되지 않던 ‘한국의 핵에너지 이용 범위 증대’를 위해 러시아에 대한 높은 우라늄 의존도를 탈피해야 한다는 근거로 미국을 설득했다고 자랑스레 얘기한 것이다. 특히 이런 설득 근거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연료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지원 또는 승인하도록 한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는 설명이다.
‘집단서방의 가치’=‘미국 민주당의 가치’ 고수하는 한국 외교
조 장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로 복원하기 위한 대화 추진 같은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서구 국가들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가령 2022년 2월24일 시작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지역 특별군사작전을 ‘러시아의 침공’이라고 표현했다.
또 “규칙 기반의 세계질서”, “미중전략경쟁 구조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국가들” 등 전통적인 집단서방의 용어, 범(집단)서방 연대의 끈을 트럼프가 망쳐놓았다는 점을 거듭 에둘러 강조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최근 이탈리아, 튀르키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과 긴밀히 협력했다고도 했다. 특히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런 한국의 외교 기조는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등을 통해 부상하는 아시아로 발길을 돌린 러시아에게는 부담을 주는 방향이다. 이는 특히 미국의 단일 패권 종식 배경과 함의를 예외적이고 일탈적인 트럼프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성과를 얻으려는 미국 민주당의 선거 메시지전략과 일맥상통 한다.
한국 외교전문기자 “미국산 쇠고기 양보해 더 큰 것 얻어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한국 기자와 조현 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두고 문답을 가진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았던 관훈클럽 총무 이하원 기자(조선일보)는 “국민적 우려도 없어지고 과학적 검증도 됐는데, 이제 (한국이 30개월 미만 소 제한을) 철폐해서 미국과의 여러가지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니, 이를 (한미협상에) 이용할 생각은 없는가”라고 조 장관에게 물었다. 관세협상과 대미투자협상에서 궁지에 몰리면 ‘30개월 미만 쇠고기 제한 수입금지’를 철폐하는 양보를 통해 다른 이익을 꾀할 생각이 없냐고 물은 것이다.
조 장관은 이에 “한국과 러시아, 벨라루스 세 나라 정도가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대만과 일본 등 다수 국가들이 규제를 철폐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번 공동사실확인문서(Joint Fact Sheet)에 이(농축수산물)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고 그대로 넘어갔다”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는 취지로 답변했다.
한국 외교 전문기자 “러시아와 엮이면 궁색해진다”
조 장관의 답변에도 러시아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기자의 의문점은 풀리지 않았다. 외교관만큼 외교 전문성이 없는 언론인은 ‘이미 끝난 협상에서 의제에 오르지도 않은 사안을 이후 협상에 써 먹을 카드로 활용하자’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가 ‘러시아가 하는 일은 한국이 하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질문으로 장내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하원 기자는 “다른 문제도 아니고 그런 문제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하고도 같이 묶이면(30개월 소고기 수입금지 계속 유지), 외교 현장에 나가서도 장관이 답변하기가 굉장히 궁색한 것 아니냐”고 조 장관에게 되물었다.
이에 조 장관은 “러시아와 우리가 합의를 해서 공동으로 (30개월 소고기 수입금지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각자 하는 것이니까 쇠고기 연령 문제로 우리가 러시아와 엮일 것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좀 더 시간을 갖자는 농림부 입장이 있긴 하지만, 적절한 시기를 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할까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단일국가 패권 어려워“…미 단일패권 종식 인정
조현 장관은 미국의 단일패권이 지속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분명한 것은 미 중 간의 전략 경쟁이 계속된다고 해서 어느 한 나라가 완전히 이기거나 또 지거나 하는 경우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지구촌 단일 패권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인정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가한 한국의 주요 일간 신문 데스크급 기자들 중에서 북극항로를 비롯해 한러관계 현안과 개선 전망에 대해 질문한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최악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부쩍 가까와진 북러관계를 활용할 생각도 못하고, 올해 북극항로 개척에 본격 나서면서도 미국 눈치 살피기에 여념 없는 ‘그림자 외교’를 쉽게 못 벗어난다는 지적이다. .
제성훈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는 지난해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기고한 논문에서 “1990년대 북러 관계가 소원해지자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졌고, 2000년대 북러 관계가 개선되자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특히 “러시아가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긴장 고조를 방지하고 남북 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러시아를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안보 기여자’로 규정하면서,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 방지와 남북 관계 개선 촉진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전략적 역할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엔트로피타임즈> 편집위원
러시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원,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
지구촌 팩트체크기구 GFCN 회원. 고정 칼럼 [엔트로피 網] 등을 집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