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오피스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고금리 환경까지 겹치며 자산 가치 하락과 금융권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미국 부동산 데이터 업체 MSCI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약 20%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조정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조용히 진행되는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급격한 붕괴가 아닌, 구조적 약화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 오피스 수요 급감…공실률 역사적 수준
이번 위기의 출발점은 오피스 시장이다.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가 정착되면서 기업들의 사무실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고, 이는 곧 공실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국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도시 오피스 공실률은 평균 19%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20%를 웃도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근무 방식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 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금리 상승이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부동산 시장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자산인 만큼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증가하고, 투자 수익률은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히 팬데믹 이전 고점에서 매입된 오피스 자산의 경우, 현재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차입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시장 불안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금융권과의 연결성이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상당 부분을 지역은행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4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미국 지역은행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약 70%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가치가 하락할 경우 담보 가치도 함께 떨어지면서, 은행의 대출 건전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지역은행은 이미 대손충당금을 늘리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상황이다. 이 같은 구조는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2008년과는 다르지만…“안심할 수 없다”
현재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주택담보대출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며 위기를 촉발했지만, 이번에는 상업용 부동산과 일부 금융기관에 위험이 집중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한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 대출 축소, 기업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며 실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통화정책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 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인플레이션 재확산 위험이 존재한다. 반대로 금리를 유지할 경우 금융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준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정책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금리 경로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확산 여부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특정 자산군에 머물 경우 제한적인 충격에 그칠 수 있지만,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보다 큰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시작된 균열이 어떤 경로로 확대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조용한 위기’라는 표현처럼,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는 리스크일수록 더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