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 부족이 곧 국가 리스크”…세계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위기’

기후·식량·에너지·분쟁까지 연결되는 심각한 사안
국제기구 “물 안보 시대 이미 시작” 주의 요구하고 나서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2025년 6월, 전 세계를 관통하는 위기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전쟁이나 금융 불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촉발된 수자원 부족이 식량 생산과 에너지 공급, 나아가 국가 간 갈등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면서, 국제사회는 ‘물’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원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실제로 6월 12일(현지시간) 유엔과 세계기상기구(WMO)가 각각 발표한 보고서는 공통적으로 “물 부족은 환경 문제가 아닌 복합 안보 위기”라고 규정했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이미 여러 지역에서 현실화된 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기후변화가 만든 구조적 위기…‘물 스트레스’ 일상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연중 일정 기간 물 부족 상태, 이른바 ‘물 스트레스(water stress)’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일시적인 가뭄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라는 점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증발량 증가, 강수 패턴의 불균형, 빙하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전통적인 수자원 공급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히말라야와 안데스 산맥 일대의 빙하 감소는 장기적으로 수억 명의 식수와 농업용수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이미 임계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하수 고갈 속도가 자연 회복 속도를 크게 초과하면서 사실상 ‘비가역적 자원 감소’ 단계에 진입했다.

 

이처럼 물 부족이 심화되면서 국가 간 긴장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일강 유역이다. 상류 국가의 대규모 수력발전 댐 건설과 하류 국가의 수자원 의존 구조가 충돌하면서 외교적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갈등이 단순 외교 문제를 넘어 군사적 긴장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물 접근권을 둘러싼 소규모 무력 충돌이 이미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더 큰 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전조’로 해석된다.

 

또한 인도-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 하천 이용 문제 역시 잠재적 갈등 요인으로 지목된다. 물은 국경을 따라 흐르지만, 관리 체계는 국가별로 분리되어 있다는 구조적 한계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 식량·에너지까지 흔드는 ‘연쇄 충격’
수자원 위기의 파급력은 농업과 에너지 부문에서 특히 크게 나타난다. 농업은 전 세계 담수 사용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만큼, 물 부족은 곧바로 생산량 감소로 이어진다.

 

세계은행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수자원 불안정성이 향후 글로벌 식량 가격 변동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밀과 쌀, 옥수수 생산량 감소가 확인되며 가격 상승 압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에너지 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강수량 감소가 곧 전력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냉각수가 필요한 화력·원자력 발전소도 물 부족 상황에서 가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물 부족 → 식량 감소 → 에너지 불안 → 경제 충격으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은 개별 국가를 넘어 글로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도 이 같은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노동력과 물류, 세제 혜택이 생산기지 선정의 핵심 요소였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물 공급’이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화학 산업처럼 물 사용량이 많은 업종은 특히 민감하다. 초순수가 필수적인 반도체 공정의 경우, 물 공급이 불안정해질 경우 생산 자체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공정 내 물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기술 투자에 나서고 있다. 또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차원에서 수자원 관리 전략을 공개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각국 정부 역시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해수 담수화 설비 확대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며, 유럽과 북미 일부 국가는 물 사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해외 농지 확보나 수자원 인프라 투자 등 ‘외부 자원 확보 전략’도 병행되고 있다. 이는 과거 에너지 확보를 위해 해외 유전을 개발하던 방식과 유사한 흐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쟁적 접근이 장기적으로는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엔은 이번 보고서에서 “수자원 문제는 본질적으로 공유 자원 관리의 문제이며, 협력 없는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물 부족은 석유나 희귀 광물처럼 시장에서 즉각 가격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았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그 영향은 식량 가격, 전력 공급, 산업 구조, 국제 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지속되는 한 이 문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각국의 경제 전략과 외교 정책, 산업 구조까지 재편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한다. 결국 물은 더 이상 ‘풍부한 자연 자원’이 아니라, 관리와 확보가 필요한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