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끊었다더니” EU 탈러시아 선언의 역설

LNG로 갈아탔지만 비용 폭등… 산업 경쟁력 직격탄
러시아 영향력 여전… 공급망 재편 속 유럽 ‘딜레마’ 심화

 

[엔트로피타임즈 손영남 기자]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유럽의 선언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겉으로는 수입 구조 다변화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비용 상승과 공급 불안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관계를 끊어낸 듯한 모습이지만, 실제 시장 구조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직간접적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 단순한 ‘탈피’가 아닌 새로운 의존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LNG 확대의 역설… 비용 폭등과 산업 경쟁력 약화
유럽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통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에너지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는 뉴스가 최근 해외매체들을 통해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보도대로라면 실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실이다. 기존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 대비 LNG는 운송과 저장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구조다. 여기에 글로벌 수요 경쟁까지 겹치면서 가격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과 중동에서 들여오는 LNG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전력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곧 제조업 전반의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대표적인 산업국인 독일을 비롯해 유럽 주요 국가들은 생산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부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서는 생산 축소나 공장 이전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산업 기반 자체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은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인 만큼, 유럽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도 적지 않다. 결국 ‘탈러시아’라는 정치적 선택이 경제적 부담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접 수입은 줄었지만 제3국을 통한 우회 공급과 글로벌 에너지 시장 내 가격 결정력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전히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 전략을 조정하며 아시아 시장으로의 수출을 확대하는 동시에 가격 정책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에도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 글로벌 산업 재편 신호탄… 한국에도 영향 불가피
에너지 시장은 글로벌 단일 시장에 가깝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수급 변화가 전체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줄이더라도 다른 지역의 수요 변화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은 유럽이 추진 중인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공급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구조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자립도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기술적·시간적 한계로 인해 단기간 내 해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유럽은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더 문제시되는 점은 유럽의 에너지 구조 변화가 단순한 지역 문제를 넘어 글로벌 산업 지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일부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할 경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공급망 변화로 이어지며 각국 산업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유럽 시장은 주요 수출 대상인 만큼 현지 생산 비용 상승은 수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글로벌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는 한국의 에너지 수입 비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기업 비용 구조와 물가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편으로는 기회 요인도 존재한다. 유럽이 에너지 효율 개선과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할 경우, 관련 기술과 제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수소, 신재생 에너지 등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유럽의 ‘탈러시아’ 에너지 전략은 아직 진행형이다. 겉으로는 의존도를 낮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비용 구조와 불안정성을 동시에 떠안게 된 셈이다. 에너지 공급망 재편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닌 장기적인 구조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탈피가 아니라 안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다. 글로벌 에너지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