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타임즈 김재영 기자] 새로운 해의 시작과 함께 국내 철강 기업들이 달라진 환경 적응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탄소 관세’, 공식 명칭으로는 탄소국경조정제도가 2026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대기 중에 떠도는 원자에 불과했던 탄소에 가격이 매겨지는 시대의 도래는 곧 한국 철강 산업이 구조적 전환이라는 시험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질 좋고 가성비 좋은 제품이 곧 경쟁력이던 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이번 시험대는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얼마나 절감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렛대 구실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EU 탄소장벽 현실화.. 철강업계 수출비용 최대 10% 증가 울상
탄소국경조정제도(이하 CBAM)은 철강 등 수입 제품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유럽은 이를 역내 기업과의 공정 경쟁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사실상의 무역 장벽으로 인식하고 있다. 관세라는 명칭은 아니지만 수입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구조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관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과되는 것인만큼 누구에게나 공평한 부담으로 자리하는 게 상식이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생산 구조나 수출 비중 등 부대적인 조건에 따라 이해득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철강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 철강 수축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여러 자료를 분석해보면 10% 내외로 추산되는 수준. 숫자만 봐도 알겠지만 절대적인 비중 자체는 크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비중 자체는 크지 않지만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이 높은 것이 유럽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철강 산업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시장이라는 전략적 의미를 고려해본다면 그 중요성은 결코 적지 않다. 때문에 CBAM이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수출 비중 이상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제 탄소 절감은 철강 산업이 필수적으로 떠안아야 할 과제가 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대처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고로(용광로)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할 경우 평균적으로 철강 1톤당 약 1.8~2.2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반면 전기로 방식은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적 영향은 물론이고 가격 부담을 생각해서라도 전기로 방식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여전히 고로 비중이 높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제도 시행에 따른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 하다.
26년 1월 1일자로 CBAM이 시행되는 것은 오래전에 결정된 사항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사들도 준비를 해오던 것은 맞다. 국내 대표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정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공정 전환 로드맵을 마련했고, 현대제철 역시 전기로 확대와 친환경 설비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준비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막대한 자본 소요도 그렇고 아물지 않은 관련 기술력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철강 산업의 저탄소 전환에 막대한 자본과 장기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감당하려면 필연적으로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간략하게 따져봐도 공정 전환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간의 연구 결과다.
앞으로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은 당연하다. 업계에서는 CBAM 적용에 따른 추가 비용이 제품 가격의 5~10% 수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소·중견 업체의 경우 친환경 설비 투자 여력이 부족해 부담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기업 간 경쟁 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CBAM 전면 시행 이후 본격 협의.. 뒤늦은 사후 대응 어쩌나
이제 시행 일주일 남짓 흐른 CBAM로 인한 시행착오는 아직 심각하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의 문제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와 관련된 골칫거리들이 불거질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준비의 미흡 때문이 아니다. 아직 CBAM 자체가 완벽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미 제도를 시행했지만 세부 규정은 단계적으로 확정되고 있는 상태다. 세부 규정이 완벽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 계산을 넘어선 비용 부담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업계는 제3국에서 이미 부담한 탄소 비용 인정 범위와 배출량 검증 방식에 따라 기업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시행 이전부터 상당수 기업들이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구조를 명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고민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민간의 대응뿐 아니라 정부의 대응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시행 이전부터 준비 기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대응이 사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일 한국철강협회에서 유럽연합의 ‘탄소 관세’, 즉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을 위한 업계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철강업계와 함께 제도 전면 시행에 따른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시점 자체가 늦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CBAM은 이미 2026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10월 관련 법 개정을 마치고, 12월에는 탄소배출량 산정 방식 등 하위 규정까지 정비했다. 사실상 기업들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주어졌던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대응 논의가 제도 시행 이후에야 가시화됐다는 점에서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기업들이 실제로 부담해야 할 탄소 비용과 직결되는 핵심 규정들이 이미 상당 부분 확정된 상황에서, 정부 역할이 사전 대응이 아닌 사후 조율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철강업계는 일단 전환기간 동안 대응 체계를 구축해 온 만큼 제도 이행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측의 하위 규정 발표로 일부 불확실성이 완화됐고, 국내 인증기관을 통한 검증도 가능해졌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업계는 여전히 남아 있는 불명확한 규정에 대해 국내 산업 여건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 간 협의를 지속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추가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유럽연합과의 협의를 통해 제도상 모호한 부분을 해소하고, 업계에 관련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근본적인 부담 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미 제도의 큰 틀이 확정된 상황에서 협의만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단순한 통상 협의를 넘어 탄소 비용 부담 완화, 친환경 설비 투자 지원 등 실질적인 정책 대응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의 부담은 고스란히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탄소 비용 보전, 친환경 설비 투자 지원, 기술 개발 지원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부담을 떠안게 되고, 이는 결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CBAM 시행은 글로벌 통상 질서 변화의 단면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역시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은 탄소 규제를 무역 규칙에 결합시키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규제를 활용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흐름이 강화되면서, 기존 자유무역 질서는 ‘규제 기반 경쟁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철강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CBAM 적용 대상이 배터리·자동차·화학 등으로 확대될 경우,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 대부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는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 관리가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핵심은 ‘탄소가 곧 비용’이 되는 시대의 도래다. 과거에는 생산 단가와 품질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탄소 배출량이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제품 1톤을 생산하는 데 배출되는 탄소가 곧 비용이 되는 구조다.
유럽이 먼저 도입한 이 제도는 다른 국가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만약 주요국들이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경우, 탄소 감축 역량 자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한국 산업은 기존의 가격 경쟁이 아닌 ‘탄소 경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